롤리타 (Lolita) -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Vladimir Nabokov), 1955



 고등학생 때는 책을 많이 읽었다. 휴대전화는 물론 음악마저 금지된 야자시간엔 공부가 지겨울 때에 달리 할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졸업 이후 억지로 앉아있을 필요가 없게된 대학생은 여가시간에 굳이 책을 읽으려고 하지 않았다. 책보단 영화가 편했고, 영화보단 술자리가 좋았다. 그렇게 활자와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하던 도중 나는 반 강제적으로 하루종일 특별히 하는 일 없이 시간을 보내야하는 상황에 놓였다. 인터넷도 잘 안되는 환경이었고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는 타입도 아닌 나는 책이라도 읽으며 시간을 보내기 위해 아주 오랜만에 서점을 찾았다.


 나의 게으른 천성은 내가 언제 또 서점에 올 수 있을지 불확실하게 만들었다. 한정된 기회 안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기 위해 사전 조사도 했고 같은 책을 여러번 들었다 놨다 하기도 하면서 오랜 시간 고민을 했지만 나는 쉽게 마음을 결정하지 못했다. 결국 책 읽는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확실히 만족할 만한 책을 고른답시고 시간을 쓰는 것보단 뭐라도 적당히 고르는 편이 시간이나 정신건강적인 면에서 훨씬 이롭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리고 마음을 내려놓고 다시한번 천천히 서고를 둘러보았다. 마침내 내 눈에 들어온건 아주 익숙한 단어, 롤리타였다. 책에 대해서는 잘 몰라도 롤리타 컴플렉스라고 하면 들어 본 사람이 적지 않을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이 책을 사기로 거의 결정했지만 그래도 혹시 모른다는 생각에 첫 장을 펼쳐보았다. 그리고 나는 바로 계산대로 향했다.


Lolita, light of my life, fire of my loins. My sin, my soul. Lo-lee-ta: the tip of the tongue taking a trip of three steps down the palate to tap, at three, on the teeth. Lo. Lee. Ta. She was Lo, plain Lo, in the morning, standing four feet ten in one sock. She was Lola in slacks. She was Dolly at school. She was Dolores on the dotted line. But in my arms she was always Lolita.


롤리타, 내 삶의 빛, 내 몸의 불이여. 나의 죄, 나의 영혼이여. 롤-리-타. 혀 끝이 입천장을 따라 세 걸음 걷다 세 걸음째에 앞니를 가볍게 건드린다. 롤. 리. 타. 아침에 양말 한 짝만 신고 서 있을 때 키가 4피트 10인치인 그녀는 로, 그냥 로였다. 슬랙스 차림일 때는 롤라였다. 학교에서는 돌리. 서류상의 이름은 돌로레스. 그러나 내 품에 안길 때는 언제나 롤리타였다.


 이 부분은 《롤리타》의 도입으로, 《오만과 편견》, 《안나 카레니나》 등의 첫 문장과 함께 역대 가장 유명한 소설의 도입부들 중 하나로 꼽힐정도이다. 번역은 가장 최근에 나온 문학동네의 번역본에서 인용했다. 내가 산 책 역시 문학동네의 책 인데, 새롭게 《롤리타》를 번역한 김진준은 살만 루슈디의 《분노》를 번역해서 제 2회 유영문학상을 수상했고, 《시라노》, 《총, 균, 쇠》 등을 번역했다고한다. 특히 《롤리타》는 특성상 원문의 느낌을 제대로 전달하기가 매우 까다롭고 번역하기 곤란한 부분들도 많아 세계 각국의 10여개의 판본과 주해본을 분석해가며 1년여간의 노력끝에 2013년 1월 30일에 출간되었다.



 이건 커버가 씌워진 상태인데 저 표지의 사진이 선정성 문제로 논란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크게 못싣은것 같다.


 《롤리타》는 가상의 인물인 편집자가 발표한 주인공 험버트 험버트의 회고록 형식으로 씌어져있으며 머리말부터 모두 소설이다. 이러한 특이한 구성 덕분에 험버트 험버트가 실존인물이라는 오해도 적잖이 받았다고 한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특유의 재치로 가볍게 느껴질 수 있지만 막상 그 상황을 상상해보니 상당히 끔찍하고 더러운 욕망으로 가득찬 소설이었다. 그래서 책을 읽은 후 영화

《로리타》를 보았을 때 그 부분이 제대로 표현이 되지 않은채 적당한 로맨스 냄새나 풍기는 모습에 기분이 언짢았었다. 소설 《롤리타》는 가해자인 험버트 험버트의 입장에서 쓰여졌다는 점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할 것 같다.


 또 작품의 빼놓을 수 없는 매력으로 작가의 언어유희나 유머가 상당히 많아 읽는 즐거움이 크다. 사소한 부분의 상징성이나 미묘한 분위기는 여러번 읽을 때 더 깊은 이해와 큰 기쁨을 갖게한다. 그리고 그냥 말장난 인줄 알았던 부분들이 플롯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하기때문에 긴장을 놓을 수가 없다. 책 자체도 500페이지 정도 되는데 한글로 옮기기 어려운 부분이나 설명이 필요한 부분들에 친절하게도 책 뒷편에 빠짐없이 주석까지 달려있어서 꼼꼼하게 읽으려니 시간이 꽤걸렸지만 상당히 즐겁게, 시간가는줄 모르고 읽었던 즐거운 경험이었다. 조만간에 다시한번 읽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