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와 나


 과장 조금 보태서 그것은 내게 최초의 불 이었다. <대부>를 보고 난 후 나는 어떤 숙명마저 느꼈고 내 삶은 크게 바뀌었다. 이전까지 내게 영화란 그저 주말 오후에 짜파게티와 함께하는 오락, 혹은 아주 가끔 극장에서 친구들과 함꼐 보던 블록버스터였다. 그랬던 내가 <대부>를 보고 영화에 대한 내 인식에 큰 변화를 겪었다.


 물론 머글이었던 내가 영화를 보자마자 배우들의 연기나 특징적인 연출과 같은 부분에 감동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솔직히 가만히 보고있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그도 그럴것이 러닝타임만 3시간인 영화가 3부작인데다 외국인 얼굴 구분하기도 힘든데 등장인물도 많아 기억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대부>를 보고 내가 느낀 감정은 영화 내부가 아닌 지루함을 참으며 영화를 보는 체험 자체에서 나온 것이다. 그냥 꺼버리고 무한도전이나 보면서 머리를 비우고 껄껄대고 싶은 욕망을 누르고 도합 9시간의 대부 트릴로지를 정복해냈을 때 찾아온 고양감과, 이해는 잘 안되지만 머릿속을 휘젓는 몇몇 장면들이 나를 기쁘게했다.


 이것은 마치 구린내나는 블루치즈에 점점 중독되어가듯이, 쓰게만 느껴졌던 커피에서 그 쌉싸래함 속에 숨은 매력을 발견해내듯이 커다란 즐거움을 위한 학습, 훈련이고,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이며 추진력을 위해 잠시 무릎을 꿇는 고등한 문화의 향유 방식인 것이다.



 당시엔 몰랐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대부>이전에도 영화나 동영상에 꽤나 관심이 있었던 것 같다. 예전에 본 만화에서 주인공이 싸구려 캠코더로 동아리 친구들과 영화를 찍는 장면을 보고 '나도 하고싶다!'고 생각 하기도 했고 엠엔캐스트를 즐겨찾기 해 놓고 UCC를 보며 많은 시간을 보냈던 때도 있었다. 그 보다 더 전에는 핸드폰에 달린 조악한 카메라로 스톱모션이나 짧은 영상을 만들었었다.


 이러한 몇가지 기억과 <대부>이후에 감상한 수많은 영화들이 내게 어떤 꿈을 꾸게 만들었고 그 꿈은 현재 진행형이며 게으른 나를 더 나은 사람이 되라며 채찍질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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