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닝>과 단상들


 어제에 이어서 오늘도 비가와서 일을 안했다. 출근했는데 사무실에 아무도 없길래 카톡을 보니 오늘 쉬라고 연락이 와있었다. 좆같은 블랙베리. 습한 공기만 잔뜩 들이마시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갑자기 생각이 나서 영화를 보기로 했다. 어제도 출근 중에 차를 돌려서 <루비 스팍스>를 봤는데 오늘 볼만할게 있을까 하고 상영시간표를 보니 <버닝>이 보늘 개봉했다고 해서 보고왔다.


 인터넷이나 영화 시작 전 광고에서 <버닝>을 보았을 때에는 평범한 양산형 한국영화인줄 알았다. 유아인과 스티븐 연의 조합이 새로워서 그냥 봐야지 했는데 막상 가보니 이창동 감독의 영화여서 놀랐다. 얼마만의 신작인가. 그리고 심지어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고 해서 더욱 기대가 되었다. 영화 시작 전에 물을 너무 많이마셔서 오줌 참느라 제대로 감상하지 못한 것 같아서 아쉽다.


 <버닝>에서 첫 번째로 느낀 것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냄새였다. 원작을 읽어보진 않았지만 다른 작품을 읽으면서 그의 작품엔 몇가지 특징이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대체적으로 하루키의 소설에서 남성은 우울증 환자이며 소심하고 찌질하거나 둔감 호구이고, 여성은 우울증 환자이며 만고의 진리를 자신의 작은 어깨위에 얹은 현자이고, 그 지혜의 편린을 알 수 없는 타이밍에 적선하듯 던져댄다. 그리고 이 남성과 여성이 만나면 높은 확률로 섹스한다. 그리고 <버닝>에서는 유아인과 전종서가 이 역할을 맡은 것 같다.


 두 번 째로 찾아온 것은 혼돈이었다. <버닝>을 관람하는 시간은 의문의 연속이었다. 모호한 비유와 상징들은 저려오는 방광 만큼이나 나를 괴롭혔다. 뭔가 알것 같다가도 바로 다음 장면의 카메라의 시선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사실 이창동 감독의 영화는 대부분 그렇다. <밀양>이 그랬고 <오아시스>역시 그랬으며 <시>도 그렇다. 그래서 내가 그의 영화를 좋아한다. 뭔가 있어보이는 바이브로 내 지적 허영심을 채워준달까? 하지만 항상 이런 영화가 좋았던 것은 아니다. 한 때는 숨겨진 상징과 메타포에 대해 부정적인 인상을 갖고있었다.


 유치해보였다. 수련회가서하는 보물찾기 같아서 전혀 의미없어보였다. 흔히들 미쟝센이 어쩌고 저쩌고 하며, 여기 이것 좀 보세요!! 주인공이 점심에 배달시킨 중국집 이름에 이런 의미가있었어요!!! 세상에, 주인공의 엄마의 패디큐어 색깔이 보라색이야!! 복선 개쩐다 감독 진짜 천재다!!!! 하면서 블로그와 SNS에 공유되는 모습이 보기싫어 눈살이 찌푸려졌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계속 관심이 가서 슬쩍 구경하기도했다. 그리고 내 머릿속에서 자아가 두 개로 나뉘어 토론을했다. 한 쪽은 비유와 상징이 너모 멋있어보이는 감정이고, 다른 한 쪽은 쓸데 없는 에너지 낭비라는 생각이었다.


 결론은 감정의 승리였다. 경화수월(鏡花水月)이라는 고사성어가 떠올랐다. 사전적 정의로는 거울에 비친 꽃과 달 이라는 뜻으로 시문에서 느껴지기는 하나 표현할 수 없는 미묘한 정취를 이르는 말 이다. 찌그러진 원 위에 계속해서 원을 겹쳐 그리다보면 결국 그 안에는 완벽에 가까운 원이 남게 된다. 말로써 표현하기 힘든 몇가지의 주제를 표현하기 위해, 혹은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감독은 수십분의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다. 감독은 메타포를 이용해 관객을 물가로 데려가 물을 마시게 유도를 한다.


 물론 저급하고 그야말로 에너지 낭비인 메타포도 존재하지만 이창동 감독의 영화는 다르다고 믿고있다. 문학인이었던 경력 덕분인지 그의 언어는 세련되었고 감성적이다. 그리고 생각하는 것을 멈추게하지 않는다. 이번 <버닝>은 8년만의 신작인데 솔직히 내게는 그의 다른 영화만큼 강렬하게 다가오지는 않았지만 바이브는 분명히 살아있다. 다음 영화는 빨리 찍어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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