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죄

 



 인간과 짐승에 대한 내 애정의 평균치를 비교한다면 나는 인간보다 짐승을 좋아한다. 특별한 이유 없이 몇몇 인간에 대해 경멸과 혐오를 느끼는 반면에 짐승들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호감이고 '못된 짓'을 하더라도 어느정도 용서가 되니까.


 며칠 전 차를 몰며 집으로 돌아가는 늦은 밤에 4차선 도로를 질주하던 개 한 마리를 보았다. 사자 갈기처럼 손질 된 갈색 털은 먼 거리에서도 눈에 띄었고 자른지 얼마 안된 것 같았지만 차가 없어 한적한 도로를 죽어라고 달려가는 모습을 보니 이미 떠돌이 생활에 익숙해 보였다. 버려진 것인지 길을 잃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짧은 만남에서도 불안한 감정을 읽어 낼 수 있었다. 길에서 불쌍한 개나 고양이 등을 만나는 것은 아주 흔한 경험이지만 볼 때마다 명치 부근에 커다란 바위가 올려진 듯한 기분을 느낀다. 


 아직도 차에 치여 길 한복판에 주저앉아있던 고라니의 얼굴을 잊지 못한다. 급하게 핸들을 돌려 피한 후 조금 떨어진 곳에 차를 세워서 119에 신고를 했다. 그리고 다시 고라니 앞으로 돌아가 차를 세웠다.  바닥에 쭉 이어진 핏자국이 너무나 안쓰러워 물이라도 좀 주려고 슬쩍 다가갔지만 녀석은 괴성을 내지르며 부러진 다리로 처절하게 기어서 도망쳤다. 한참 후에 도착한 119대원이 목에 올가미를 걸고 몸부림과 함께 괴로운 울음소리를 내는 장면이 너무 충격적이었지만 현실적으로 대원을 탓 할 수는 없는 상황임을 알기에 그냥 고개를 돌려버렸다. 서둘러 자리를 벗어났다.

 

 초등학생 때 별 생각 없이 귀여워서 사온 병아리가 물도 모이도 먹지 않고 죽어갈 때 침대에 누워 삐약거리는 소리를 들으며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너무 슬퍼서 크게 울 때 놀란 얼굴로 찾아온 어머니의 위로를 받았다. 친구들이 괴롭히던 햄스터가 불쌍해 집에 데려왔지만 하루만에 우리에서 벗어나 내게 깔려 죽었다. 처음으로 키운 개는 집을 나가 전단지까지 붙이며 찾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귀여워하며 키우던 다른 개는 배변훈련에 거듭 실패해 옥상으로 쫒겨났지만 나는 옥상에 올라가는 게 귀찮아 사료를 주는데 소홀히 했다. 적당히 사료봉투를 뜯어 놓으면 알아서 먹겠거니 했지만 비오는 날 옥상에 갔을 때 사료가 물에 퉁퉁 불어있었다. 그리고 아파트에 이사간다는 이유로 할머니 댁에 보내버렸다. 몇 년뒤 차에 치여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5년정도 키운 금붕어들은 어항을 청소해 줄때 실수 하는 바람에 아가미가 타들어가며 죽어가던 모습을 보는게 너무 괴로워서 외면해버렸다. 

 

 지금은 고양이 두 마리를 키우고 있다. 7달 정도 된 것 같다. 혼자살다보니 일 때문에 집을 비우면 외로울 것 같아 자매를 데려왔다. 골목에서 길 고양이를 보았을 때, 주유소에서 짧은 목줄에 매인 개가 내 손을 핥을 때, 우리에 갇힌 기린을 보았을 때, 그 때마다 과거의 기억이 떠올라 괴롭다.  그러면 집에 돌아와서 나를 기다리는 고양이들에게 깡통하나 까서 간식으로 주고 낚싯대로 놀아준다. 난 아무래도 천국은 갈 수 없겠지만 이런 방식으로 나마 속죄하며 자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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