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가 짧은 고양이를 보았다.

 



 깊은 한숨이 새어 나오는 것을 막을 수 없는 하루를 적당히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기분 나쁜 포만감과 점점 엉망이 되는 차. 만신창이가 된 패잔병 같은 기분으로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자니 잊고싶어 한 쪽에 치워두었던 생각들이 떠올랐다. 우편함은 나에게 선택을 강요하는듯 다양하고 지독하게 현실적인 숫자들을 보여준다. 들떴던 마음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고 화도 사그라들었다. 한 겨울, 수도꼭지의 온수 방향을 착각해서 맛본 차가움 만큼이나, 한 여름 자려고 누웠을 때 들리는 모기소리 만큼 아주 파란색으로 뇌가 물드는 기분이들었다. 이미 집엔 도착 했다. 주차도 마쳤고 시동도 껐다. 하지만 쉽게 차에서 내리지 못했다. 집 앞 도로의 신호가 바뀌었는지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완벽한 정적 속에서 그저 멍하니 등을 기대고 앉아있는데 유유히 지하 주차장을 종단하는 고양이 한 마리. 녀석의 우아한 걸음을 지켜보았다. 유난히 짧은 꼬리는 어디서 잘린걸까. 아니면 원래 저렇게 짧을 수 있는걸까. 내 차의 앞유리 오른쪽에서 등장해서 지금 왼쪽으로 사라지려하는 녀석. 더 이상 볼 수 없는 각도로 넘어가 버린 고양이의 꼬리를 생각 하며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몇 걸음 걷고 뒤를 돌아봤을땐 이미 그 꼬리가 짧은 고양이는 지하 주차장 종단을 마쳤는지 사라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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